[뉴스워치=어기선 기자] 탄금대하면 딱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조선시대 명장 신립 장군이다. 하지만 탄금대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다.
신라 진흥왕 때인 552년 우륵은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했다. 진흥왕은 우륵을 반기면서 국원(충주)에 거주하게 했다. 그리고 신라의 청년인 법지, 계곡, 만덕을 선발, 악(樂)을 배우게 하고 우륵을 보좌하도록 했다.
우륵은 국원 지금의 충주에 살면서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한 나지막한 산을 주목했다. 우륵은 이곳의 풍치를 탐미, 산 정상에 있는 너럭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탔다.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이라고 해서 ‘탄금대(彈琴臺)’라고 불렀다.
탄금대에서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자 사람들이 불러 모아졌고, 마을이 형성됐다. 이에 탄금대 주변에는 가야금과 연관된 지명으로 칠곡리(칠금동), 금뇌리(금능리), 청금리(청금정) 등이 있다.
탄금대 아래로 남한강이 흐르는데 강변에 기암절벽이 형성돼 있고 출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탄금대는 각종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탄금대는 견문산에 있다. 푸른 절벽은 낭떠러지로 높이가 20여 길이요, 절벽 위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하여 양진명소(楊津溟所)를 굽어 임하고 있는데 우륵이 거문고를 타던 곳이다. 후세 사람이 이곳을 탄금대라 이름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충주 서쪽으로 8리에 위치하며, 강 아래에 큰 내가 있는데 금휴포(琴休浦)라 한다”고 언급, 가야금을 타며 쉬던 곳이란 의미로 쓰였다.
탄금대가 유명세를 탄 이유는 바로 임진왜란의 비극적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당시 도순변사이던 신립은 8천여명의 군사와 함께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에 맞서 탄금대에서 격전을 치렀다.
신립 장군은 탄금대 전투에 앞서 열두번을 오르내렸다고 해서 ‘열두대’라는 지명도 있다. 결국 신립 장군은 왜군에 대항해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해 결국 패했고, 신립 장군은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투진,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탄금대는 우륵이 ‘가야’라는 나라를 잃어버린 슬픔이 담겨진 지역이기도 하고, 신립 장군이 전쟁에 패배를 한 울분이 담겨진 곳이다.
그리고 온가족이 산책을 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이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오붓하게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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