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법원, 단체교섭권 인정 판결 잇달아...노동계 "환영" vs 업계 "우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김은정 기자] 법원이 택배기사에 이어 대리운전 기사들에게도 사실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했다.

통상 이들 직군은 개인 사업자 성격이 짙은 업종이나 본사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다는 사유 등으로 법원이 근로자로 본 것이다.

법원의 이 같은 판결로 향후 택배기사나 대리운전기사들의 단체교섭권과 파업을 포함한 노동3권 행사가 본격화 될 경우 연관 산업에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1부는 손오공과 친구넷 등 대리운전업체 2곳이 부산 대리운전산업노조 소속 조합원 3명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고 19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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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 기사들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첫 판결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해당 대리업체 2곳은 부산에서 대리운전 서비스업을 하는 곳으로 대리운전 접수·기사 배정에 필요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대리기사 3명은 두 업체와 각각 계약을 맺고 운전 업무를 해온 사람들로 2018년 12월 이들 중 한명이 '부산대리운전산업노동조합'을 설립해 조합원 자격을 취득한 뒤 두 회사를 상대로 단체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자 해당 업체들은 이를 거부, 대리기사들은 독립적으로 영업을 하는 사업자들일 뿐 노동자가 아니라며 법원에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리기사들이 이들 업체와 사실상 '사용종속관계'에 있고, 근로를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이나 기타 수입을 받고 생활하고 있어 근로자가 맞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리운전 업무 내용, 대리운전이 주로 이뤄지는 시간, 대리운전 업무 수행에 필요한 시간, 우선 배정방식에 의한 대리 기사 배정 등에 비춰볼 때 피고가 겸업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고, 실제로 피고들은 원고들에게만 소속돼 있어 근로 전속성 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고들이 피고들로부터 대리운전 1회당 3천원의 수수료를 받는 점, 대리운전 업체가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책정하고 있는 점, 원고가 피고들에게 복장 착용이나 교육 의무 부과, 업무지시를 따르도록 하는 점에서 지휘·감독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또 "노동조합법은 전속성과 소득 의존성이 약한 측면이 있다고 할지라도 특정 사업자에 대한 소속을 전제하지 않고, 고용 이외의 계약 유형에 의한 노무 제공자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근로자를 정의하고 있다"면서 "교섭력 확보를 통한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노동조합법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피고들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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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법원은 택배 기사들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노동자라는 첫 판단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지난 15일 CJ대한통운 대리점들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교섭 요구 사실 공고에 시정을 명령한 재심 결정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약간 이질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택배 기사들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이번 소송 참가인인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도 노동조합법에서 정한 노동조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택배노조가 원고들에게 서면으로 교섭을 요구했으니 원고들은 참가인의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할 의무가 있다"며 "이 같은 측면에서 공고 의무 등을 인정해 원고의 신청을 기각한 이 사건 재심 결정은 적법하다"고 설명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정부가 2017년 설립 필증을 발부하자 CJ대한통운과 대리점들에 택배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단체교섭을 제안했다.

이들이 단체교섭에 필요한 절차인 '교섭 요구 사실 공고'를 하지 않는 등 교섭에 응하지 않자, 중앙노동위원회는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놨다.

이에 CJ대한통운과 대리점들은 이러한 결정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여러 건 제기했다.

행정3부 외에도 12·13·14부로 나뉘어 소송이 진행됐고 이날 첫 판결이 나왔다. CJ대한통운이 제기한 소송은 다른 재판부가 심리한다.

택배노조는 "CJ와 대리점들은 이미 검증이 끝난 택배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다투겠다고 무더기 소송을 제기하며 설립필증 무력화에 나섰다"며 "택배 현장에서도 광범위한 부당노동 행위로 노동조합 파괴에 전력을 기울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CJ대한통운과 대리점들은 택배 기사들이 개별 사업자들로 노동자가 아닌 사실상 사용자라고 주장해왔다.

또 대리점장이 택배기사들에 비해 우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 3권'을 인정하면 대리점장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리운전기사와 택배기사들에 대한 1심 법원의 판단은 향후 상급심을 거쳐야 최종 결정되나 이들 업종 종사자들이 근로자 지위를 첫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노동계는 "사법부가 전향적 판결을 내렸다"며 환영하고 있다.

반면 관련 업계에서는 이들이 단체교섭권을 무기삼아 본격적인 단체행동에 나설 경우 택배 단가 및 대리운전 요금 인상 사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나아가 결국은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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