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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고공농성 삼성해고자 김용희씨..."무노조 삼성 바뀌길 바래"

기사승인 2019.08.26  0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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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역 사거리 CCTV 철탑위에서 70여일째 사투..."삼성 사과와 해고자 명예회복"

지난 23일, 강남역 폐쇄회로TV 철탑위에서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활동가들에게 팔을 들어보이는 김용희씨 모습 (사진=뉴스워치)

[뉴스워치=이우탁 기자]서울 강남역사거리 25m 폐쇄회로(CC)TV 철탑 위에서 70여일째 고공농성 중인 김용희(60)씨. 그는 삼성 해고자 신분이다.

김씨는 지난 6월10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바라보이는 철탑 위로 올라가 '삼성의 사과와 원직복직합의'를 요구하며 지금도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91년 3월 28일 삼성테크원(現 한화테크원)에서 해고당했다. 노조설립을 주도했다는 이유에서다.

1982년 창원공단 삼성항공 1공장에 입사했던 김씨는 87년 마창노련(마산·창원노련)에 가입해 노조민주화 운동을 시작했다. 이어 90년 3월 경남지역 삼성노동조합 설립위원장으로 노조활동을 했다.

김씨는 해고 이후 28년간 삼성과의 기나긴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런 와중에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철탑 위에서의 고공농성이다. 

뉴스워치는 지난주말 삼성그룹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김용희씨(60)와 직접 전화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바라보이는 서울 강남역사거리 25m 폐쇄회로(CC)TV 철탑 위, 지난 6월10일 이후 지금까지 고공농성 중인 삼성그룹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김용희씨 (사진제공=김용희)

-삼성에서 해고된 이후 무슨일이 있었나

제가 91년에 부당하게 해고됐다가 94년도에 복직합의서를 쓰고 러시아(당시 삼성건설 러시아 지점)로 복직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노조추진위원장 했었으니 노조를 만들 위험성이 있어 국내는 안 되니까 해외로 가라고 그렇게 됐습니다.

해외에 나가서도 여전했습니다. 사측 비서실은 당시 노조 만들려고 하는 강성 근로자를 해외로 보내거나 회유 등을 해서 결국 회사가 생각하는 데로 노동조합 설립을 가로막는 식이었죠.

저 같은 경우는 끝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자 사측이 저를 간첩으로 몰아 저녁에 손발을 오랏줄로 포박해놓고 러시아 한국대사관에 신고를 했습니다. 당시 러시아 한국대사관 안기부 직원이 나와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결과는 “간첩혐의 없음” 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삼성에 복직해야 된다 그랬더니 당시 삼성시계의 경우 경영상태가 어려워서 구조조정을 해야 되는데 지금 김용희씨가 들어가게 되면 회사에 대한 사원들 불만이 일촉즉발에 있어 결국 그 불만들이 고스란히 노조 만드는데 방향을 틀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노조설립하려고 비밀리에 작업을 했던 동료들이 있었거든요. 삼성은 그것을 다 파악하고 있었죠. 러시아 갔다 돌아오니까 이미 그 동료들 중 50% 정도는 정리돼 있었습니다. 반이 남아 있었는데 사측은 그마저도 위험하다고 생각해 삼성시계는 안되니 삼성항공(테크원)으로 발령을 냈어요.

삼성테크원으로 출근하라고 해서 갔더니 거기서도 노조 포기각서를 강요했습니다. 당시 저는 헌법에 명시된 노동권으로 노조설립이 보장돼 있는데 왜 그렇게 가로막냐 그러면 출근할 수 없다. 그래서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 가서 단식투쟁하고 있는데 사측은 저를 공무상비밀표시무효죄 및 공갈죄로 1차 구속을 시켰습니다.

그 뒤 구속되고 나와서 밀린 임금을 달라고 했습니다. 임금은 미지급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3년 이내에 청구할 수 있거든요. 3년이 넘으면 소멸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99년도에 임금을 달라고 했더니 공갈죄로 또 구속이 됐습니다. 삼성을 상대로 협박을 했다는 겁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한창이던 때 삼성 본관 앞에서 계속 투쟁하기도 하고 차 한대 빌려 계속 서울시내 질주하며 알리고 삼성 앞에서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하다가 3년 전에 여기 서초 삼성사옥 앞에 텐트를 쳤습니다. 아무리 외치고 싸우고해도 삼성에서 누구 한 사람 만나자고 얘기 조차 없었어요.

-왜 고공농성을 하나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32살에 해고돼 지금 나이가 60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59년 7월10일생인데 2019년 7월10일이 정년퇴임 일이었죠. 정년퇴임하고 나면 이젠 요원하지 않습니까. 결국 2019년 6월10일 단식에 들어갔어요.

지난 세월 단식투쟁으로 몸이 많이 상했겠지만 그래도 한 달 정도는 버티겠지 하고 단식 들어갔는데 1주일째가 가장 힘든 때에요. 1주일이 돼도 삼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차라리 이럴 바에야 정년 퇴임을 맞이해서 그냥 철탑 위에서 마지막까지 싸워보자는 심정으로 올라왔던 것이죠.

그런데 올라와서 막상 다른 분들의 지지와 연대 단위가 늘어가게 되고 대책위가 세워지고 또 밑에서 너무 애쓰는 모습들이 이게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삼성을 바꾸려고 나 혼자 하려고 했던 게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동지들의 마음을 품고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현재 심정은

지금 심정은 글쎄요, 복잡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9일에 상고심이 잡혔지 않습니까. 삼성이 좀 변하지 않을까, 삼성노조파괴 관련해서 지금 32명이 재판을 받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본다면 삼성이 가시적인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그 동안 무노조 경영 안에서 빚어진 여러 가지 잘못된 것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었던 분들의 문제들이 일정 부분 해결되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는 가지고 있습니다.

-건강상태는 

아직 진단을 안 받아서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래 전 한국기독교인권회관 거기서 48일째 단식투쟁을 했을 때도 진료를 거부했었죠.

삼성과 투쟁하다 보면 참 힘들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그때도 진료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건강상태 알아봐야 오히려 더 고민스러울 것 같고 죽을 각오로 해야 싸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디 아프다고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최근 여기에 인위협에서 올라왔을 때도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톨릭신부님에게 얘기했어요. 지금 내가 내 몸 상태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고. 의사선생님이 고공농성은 무리다. 당장 내려와서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말했지만 저는 목숨 걸고 올라왔는데 치료받으러 내려갈 상황도 안 되는데. 설령 내 몸의 병을 알고 그 고민까지 짊어지고 여기서 농성하라는 말인가. 죽을 각오로 여기 올라왔고 복직합의서를 받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 제 몸 상태는 어떤지는 모릅니다. 여기 올라오기 전에는 무기력증, 불면증 등 뭐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철탑 위에서 어떻게 생활하는가 

철탑 밑을 지키는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동지들이 올려보내는 미음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 수록 과거에 힘들었던 부분들이 자꾸 많이 떠오릅니다. 이제 나이가 60이 넘다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고공투쟁은 언제까지 

원직복직합의서가 제 손에 쥐어질 때까지는 내려갈 생각이 없습니다. 삼성이 복직합의서를 들고 올라와서 합의서명하기 전까지는 내려 갈 마음이 없습니다.

지난 세월, 워낙 많이 속고 당해서 복직확인서를 받기 전까지는 계속 있겠습니다.

-동지들에게 하고픈 말

지금 철탑 밑에 남아 있는 동지를 비롯해 다른 동지들에게 뭐 할 얘기가 있겠습니까. 힘 닿는 데까지 끝까지 싸워서 우리의 명예를 회복하고 삼성에게 사과를 받고 근본적인 삼성의 노사문화를 바꿔내자는 일념으로 힘들더라도 같이 싸우자 그것뿐입니다.

 

이우탁 newswatch@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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