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어기선 기자] 지난 1일 휴가를 맞이해 해파랑길을 걸었다. 포항 터미널에서 영덕을 거쳐 울진 후포항까지 걸었다. 총 길이는 대략 100km 정도다.

지난 1일 아침 7시 20분 서울고속버스 경부터미널에서 포항터미널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을 때만 해도 과연 목표로 삼았던 해파랑길 100km를 걸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왜 하필 해파랑길 그것도 포항터미널에서 영덕을 거쳐 울진 후포항까지였을까.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공원에서부터 고성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770km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트레킹 코스다.

해파랑길은 옛 7번 국도를 따라 만든 코스로 차량이 많지 않고, 한여름이 아닌 이상 사람들도 많지 않다. 또한 차량이 빈번하게 오가는 곳은 자전거 테크길을 만들어 안전하게 도보여행을 할 수 있다.

그동안 고성에서 속초, 주문진에서 강릉, 강릉에서 정동진, 삼척 등 일부 구간을 대략 20km씩 걷기도 했다. 하지만 경북 구간은 걸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번 휴가 때 몰아서 한꺼번에 걸어보자는 심사로 걸었다.

포항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죽도 시장을 찾아 포항물회를 먹었다. 포항물회가 다른 물회와 다른 점은 물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산 회의 쫄깃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포항 시내를 빠져나오니 곧 영일대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라서 그런지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가슴이 뻥 뚫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서와. 해파랑길은 처음이지?’라면서 도보여행의 어려움이 곧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길 아래에는 파란색으로 표시돼 있기 때문에 그 파란색 표시만 보고 북으로 올라가면 되는 것이었다. 오른쪽에는 바다, 왼쪽에는 산이 펼쳐졌다. 그리고 아래에는 파란색 표시가 북을 향해 있었다.

무작정 걸으면 된다는 심정으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그나마 해파랑길이 가장 좋은 점은 ‘화장실’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해파랑길에는 곳곳에 해수욕장이 있고, 그 해수욕장에는 공중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화장실 문제를 갖고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역시 걱정은 먹거리 걱정이었다.

영일대해수욕장에는 영일대가 있다. 영일대는 한자로 표시하면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라는 것인데 최근에 지어진 영일대해수욕장의 랜드마크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는 크게 없지만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에는 가장 좋은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영일대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는 그야말로 기상을 펼치기는 가장 좋다. ‘君者樂山(군자요산), 知者藥水(지자 요수)’라는 말이 있다. 즉 군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동해바다를 보면서 가슴이 뻥 뚫리면서 새로운 기운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영일대 해수욕장을 벗어나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도보여행이 시작됐다.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자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나마 서울이라는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벗삼아 걷는다는 마음에 상쾌함이 느껴졌다.

영일만3일반 산업단지를 지날 때에는 우리나라 산업단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있었다.

걷는데 원칙은 두 시간 마다 30분씩 쉬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쉴 때는 확실하게 쉬어야 하기 때문에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었다. 그 이유는 발바닥의 열기를 식히기 위한 것이다. 발바닥에 열기가 가득하면 그것이 물집이 되고, 발바닥을 아프게 해서 걷는데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30분간 쉬면서 발바닥의 열기를 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첫날은 칠포해수욕장을 거처 오도리간이해수욕장에서 날이 저물어 1박을 하기로 했다. 첫날에는 대략 20km 정도 걸은 것으로 기록됐다.

둘쨋날 일어나보니 가장 큰 걱정은 이른 아침이라서 아침식사를 하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도심의 경우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침식사를 하는 식당이 많겠지만 오가는 사람들은 물론 오가는 차량도 적은 이 도로에서 아침에 문을 연 식당을 찾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침식사도 하지 못한 채 북쪽을 향해 걸어야 했다. 이라기방파제를 거쳐 월포해수욕장에 도착을 하니 24시간 편의점이 있어 컵라면으로 아침식사를 대용해야 했다. 그리고 또 다시 기약 없는 북쪽으로의 도보여행이 시작됐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아침식사를 컵라면으로 떼웠다는 생각을 지우게 하고도 남았다. 조사리간이해수욕장, 화진해수욕장을 지나니 영덕으로 들어섰다. 포항에서 영덕으로 넘어간 셈이다.

이윽고 장사해수욕장에 들어서니 커다란 배가 눈에 띄었다. 이 배가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이라는 것을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알게 됐다. 만약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관람을 하고 갔을텐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후 구계항, 오포3리 해수욕장을 거쳐 강구항으로 들어서니 이틀째 날이 저물었다. 강구항에 들어서니 대게 모형을 비롯해서 그야말로 대게 천국이었다. 영덕과 울진이 대게가 유명하다고 하지만 대게 식당이 즐비했다. 대게가 먹고 싶다는 생각에 한 식당 주인에게 물어보니 박달대게가 10만원이었다. 혼자서 먹기에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결국 포기하고 그냥 숙박을 했다.

그 다음날 일어나니 마침 강구항에 해가 뜨기 시작했다.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바다는 워낙 잔잔하기 때문에 일출이 더욱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일출을 뒤로 하고 또 다시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역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나오지 않아서 어제 먹던 초코바로 아침식사를 대용했다. 그런데 걸은지 5분도 안돼 식당이 나왔다. 역시 머피의 법칙은 존재했다.

 

조금 걸으니 영덕 해맞이 공원이 나왔다. 조경이 잘돼 있는 공원으로 한 번 가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또 다시 기약 없는 걸음이 이어졌다. 축산항까지는 그냥 도로였다. 해변가 도로도 아니고 그냥 일반 도로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곳곳에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테크길을 마련했기 때문에 일반 도로와 따로 떨어져 걸을 수 있었다. 워낙 날씨가 더웠기 때문에 아이스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축산항 편의점에서 결국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또 다시 기약 없는 걸음이 이어졌다. 도대체 왜 도보여행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셋쨋날 오후가 되니 이제야 슬슬 다리에 근육통이 오기 시작했다. 아직도 갈 길은 많이 남아있다. 당초 계획했던 후포항까지 가자면 아직도 많은 걸음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도보여행 첫날만 해도 바다만 봐도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지만 이제 바다를 보는 것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곳곳에서 갈매기들이 도보여행객을 반겨주는 맛이 있기 때문에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대진해수욕장까지 왔다. 고래불해수욕장까지는 대략 3~4km 정도 남았는데 도저히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근육통이 심하게 오기 시작한 것이다. 몇 발짝 걷다가 멈춰서고 몇 발짝 걷다가 멈춰서기를 반복했다. 그나마 중간중간에 펼쳐진 장관 때문에 걸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쉽지 않은 도보여행이었다. 고래불해수욕장만 가면 숙박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파도 무조건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걷기를 반복하면서 겨우 고래불해수욕장에 들어섰고, 숙박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후포항까지 과연 걸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도 후포항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일어나서 걸었다. 네 번째 아침의 바다는 세 번째 아침의 바다와는 또 달랐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서 파도는 그야말로 성난 야수와 같았다.

세 번째 날에 있었던 고통을 마치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이슬비가 내리면서 후포항까지 꼭 가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걷기 시작했다. 저 바다가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걷다보니 영덕을 지나 울진으로 들어섰다.

울진으로 들어서면서 이제 도보여행도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마음이 점점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 날씨도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도도 점점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후포항 들어서면서 바다는 진정됐고, 도보여행도 끝을 보였다. 포항터미널에서 영덕을 지나 울진 후포항까지의 도보여행.

도보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짧은 여행이었을지 모르고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여행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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